
한 주가 바쁘게 지나가는 스타트업에 다니면서 생긴 특징은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이 늦게 끝나는 경우도 있고, 공부해야 살아남는 직업이기에 공부를 하느라 귀가가 늦곤 한다.
요즘은 10시에 출근하고 7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집에 도착하면 밥을 지어 먹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집에는 언제나 먹을 것이 부족하다.
주말이 다가왔다. 먹을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어, 라면을 끓여먹을테다. '스낵면'을 먹을 것이다.
이 라면은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을 때 먹으면 적당한 포만감을 준다. 다른 라면보다 비실비실하게 생겨서는, 매력적인 맛을 가진다.
밥을 말아먹으면 맛있다고 스스로 소개하는 라면인데, 적절한 소개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라면을 두 봉지 집어 들었다. 최근에는 식사량이 줄어 일반적인 라면을 두 개 다 먹지 못하는 일도 있다.
그래도 스낵면 두개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물에 불을 올렸다. 반드시 물을 끓을 때에 스프와 라면을 순서대로 넣곤 했다.
순수한 물을 끓여야만 끓는점이 내려가기에, 빨리 끓기 때문에 이득이라는 이과적인 생각이었다.
이제는 그냥 귀찮아서 면이든 스프든 같이 넣어서 끓여버린다.
약 2분 30초가 지났다. 스프와 면을 담은 물이 끓기 시작한다. 이 때 집중해야 한다.
라면이든 어디든 자고로 계란은 완숙이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서부터 계란을 넣지 않으면 안 된다.
게으름 피우다가 나중에 넣으면, 노른자가 흐물흐물하고 비린 계란이 되고 만다.
물이 끓는 순간 잽싸게 계란과 멸치 액젓, 굴소스를 넣었다. 이 친구들과 함께하려고 일부로 물을 좀 더 넣었다.
첫 번째 계란을 터뜨려서 라면에 넣는 순간, 왜인지 계란 껍질이 잘 까지지 않았다.
느낌이 애매모호 했으나 몇번 더 쳐서 계란을 깨뜨려 라면에 넣었다.
왠걸, 계란 노른자에서 검은색 무늬들이 비추어졌다. 왜 그러는걸까. 이 라면은 먹으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의 평화로운 라면 조리를 방해한 검은 계란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스낵면 두 개를 그렇게 보내주게 되었다.
긍정적인 나는 그러려니 했다. 인생이란 자고로 이런 이벤트가 한 번씩 있어줘야 재미있는 법.
재미있는 일이 나에게 발생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마음까지 먹어버리는 사람이다.
이제 남은 스낵면은 하나. 이마저 잃어버릴 수는 없다. 라면 한 봉지를 꺼내 아까와 같은 루틴으로 조리하기 시작했다.
계란을 믿지 못하게 되어버린 나는, 계란을 먼저 종지 그릇에서 열어보고 상태를 확인한 후 라면에 넣게 되었다.
아..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비극. 앞으로 계란을 맞이할 때에는 종지 그릇에서 선제 검사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다행히 이번 계란은 싱싱했다. 냄새까지 맡아보았다. 나름대로 억울한게 것이, 소비기한이 아직 많이 남은 계란들이란 말이다!
'싱싱한' 계란을 라면에 넣은 후 팔팔 끓였다. 액젓과 굴소스도 탁월한 스냅 컨트롤로 필요한 정도만 넣었다.
내가 원하던 컨디션의 라면이 나왔다. 이런 라면을 원했다. 이제 이 라면과 곁들일 김치와, 재미진 영상만이 있으면 된다.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있던 스낵면을 모두 빨아들여 버렸다.
아아.. 역시 스낵면은 양이 적은 것인가. 아니면 내 위장이 줄어들은 척을 했던 걸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하여 집에 있던 진라면 작은컵을 꺼내 들었다. 이 것으로 나의 2% 부족한 마음을 채우겠다.
커피포트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작은 냄비에 물을 끓였다.
생각해보면 집에서는 컵라면보다 냄비라면이 더 빨리 조리되는 것 같다.
끓인 물을 부어서 익히는 것과 끓인 물로 끓여버리는 것 중에서 후자가 더 빠르게 되지 않을까?
하여튼 좀 기다리다보니 컵라면이 완성되었다. 계란이나 진리의 소스들을 넣지는 못하지만, 컵라면도 특유의 맛이 있다.
컵라면은 김밥류와 매칭하면 강한 결합력을 보인다. 국물과 면발에 관련 있다 생각한다.
냄비 라면과는 다르게 본격적이지 않은 국물의 맛과, 퍼지지 않아 야들야들한 면발이 김밥류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갑자기 말이 딴 소리로 흘러가는데, 내 글이 원래 이런 식이다.
하여튼x2 컵라면을 먹을 차례가 되었다. 한 젓가락 올려들고 김치를 그 위에 얹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입 빨아재낀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이토록 먹어 왔던 진라면 작은컵은 이 맛이 아니다.
무언가 알 수 없이 텁텁한 면발과 국물.. 내가 예상했던 맛이 아니었다. 소비기한이 한 달 남아있긴 하지만, 오래되어서 그런걸까?
이 것을 버릴까 아니면 그냥 먹을까에 대한 짧은 고민을 했다.
가난했던 시절이라면 이 라면을 그대로 먹었을 것 같다. 다만 이제는 그 때와 다르게 (조금) 넉넉한 사람이다.
이 컵라면의 운명은 검은 계란의 스낵면과 함께 하게 되었다.
오늘만 라면을 네개나 끓였는데 뱃속에 있는 라면은 하나뿐이다.
이대로 주린 배를 잡고 약속을 나가도 되지만 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무언가를 손해 본 것 같다!
나는 라면을 하나 더 끓이기로 마음 먹었다. 마침 한 개 남은 신라면이 있었다.
초심을 잊지 않고, 종지 그릇에 계란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소비기한까지 확인했다. 괜찮았다.
이렇게 신라면 하나를 더 완성시키고 맛있게 먹었다... 이 글은 이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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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계란 노른자가 검정색으로 변한 것을 누군가는 가열에 의해서 그렇다, 누군가는 그냥 먹어도 된다 한다. 흑변 현상이라고도 하던데, 그냥 나는 안 먹을거다.
- 라면 스프를 먼저 넣는다고 해도 끓는점이 0.7도 정도 밖에 안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도 올라가는건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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