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에서 길을 잃다
나는 돈에 대해서 불안함을 느꼈다.
'결혼은 언제 하지?', '식에는 얼마 들려나?', '아이는 가져야할까?', '내집 마련은 언제 하지..?'
뭐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자산을 불리려는 사람들이 SNS에서 많이 보였다. 내 생각에 영향을 주었다.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나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오는 미래, 가정을 위해서, 이래야 살아남는다고. 지금 사회에서는.
모으고 싶은 금액 목표가 있는건 아니었다.
'어느 나이에 얼마 모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은 누구라도 내주기 어려우니까.
나는 옥죄어졌다.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돈 얘기가 나오면 주눅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저축 강박이 생겼다. 마땅히 지불하고 사야되는 것들도 아까웠다.
저렴한 것이 내 취향이 되었다.
나는 갈 길을 잃어 헤매는 사람이었다.
돈을 모아야 한다는 뜬구름잡는 불안만이 있었다.
나는 왜 갇힌걸까
얼마전 회사 사람들과 여행을 갔다. 우연히 결혼이나 돈 관련해서 얘기가 나왔다.
감사하게도 좋은 얘기가 많이 나왔다. 부업을 추천해주시던 분도 계셨다.
나한테 도움이 되었던 말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 막 살아도 된다'는 쿨한 문장이었다.
이 문장을 여자친구와 같이 얘기했다.우리는 왜 돈을 모아야 한다고 했을까? 매년 2천만원씩 모으자고 얘기했었는데.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낳지 않는다면, 강박을 갖고 살지 않아도 되는거 아닌가?
살다보면 돈이 모이긴 모일거다. 너무 비싼 여행을 남발하거나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면.
시기가 문제가 될 뿐 대출끼고 내집을 마련한다는 것도 가능한 수순이다.
서울 중심부가 아니라면 40이 되기도 전에 충분하다.
별 일이 없으면 생활비로 한 달에 80만원 정도 사용한다.
사치를 부리지는 않는다. 별 일이라는 것은 겨울 옷을 사야하거나 여행을 가는 정도이다.
그럼 못해도 1년에 천만원 이상을 모아질 것 같았다.
만약에 3년뒤에 결혼을 한다고 해도 최소 3천만원이 있는 것이다.
결혼의 조건이 무엇일까? 내집? 결혼식? 둘 다 아니다.
결혼식이야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 미루면 된다.
결혼할 때 내집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
오로지 필요한 것은 전-월세방과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여자친구의 말에 확신이 들었다.
내 말을 듣던 여자친구는, 우리 사이에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가정하고 사고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여자친구는 지금 당장 회사일에 집중하느라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있을수도 있겠지만.
아이를 가져볼까 하는 마음이 어디서 오는걸까에 대해 돌아봤다.
'나중에 아이가 없으면 후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이 먹고 쓸쓸하지는 않을까?'. 그 정도였다.
화목한 가정을 꾸린다는 것. 아들하나 딸하나 낳아서 잘 기르는 것.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하고 모아야하고, 정말 많은 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아이를 가지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면 돈에 대해서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돈에 대해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한푼한푼 아낄 필요가, 불리려고 매일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그냥 만족을 하고 살면 되는거 아닐까. 나는 지금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탈출 선언
내 집은 아니지만 용산에서 잘 살고 있다. 돈도 잘 모으고 있다. 여행도 가고 싶으면 간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회사가 있다. 일에서도 성장할 것들이 많다.
일주일에 운동도 두 번 이상 하고, 친구들, 회사 사람들과 술도 많이 마신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들어주고 믿어주는 고마운 여자친구도 있다.
돈에 대한 부담감을 버리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 나는 이 일을 재미있어서 했다.
수평적인 문화가, 성장이, 제품을 만든다는 것, 동료들과 좋은 피드백을 주고 받는 것이 나에게는 재미다.
회사에서 금전적 보상을 더 받아내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연봉을 더 많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하는 노력들을 정말 잘 알아줄까?
회사를 즐기지 않았다.
돈을 더 많이 받는, 더 안정적인, 더 좋은 복지의 회사를 다니는 누군가에게 묘한 패배감을 느꼈다.
미로의 끝이 보인다.
퇴근 후에도 돈걱정 할 필요 없이 두다리 죽 뻗고 쉬면 된다.
글 쓰는게 재미있다면 글을 쓰면 되고, 축구 경기를 보고 싶다면 보면 된다.
돈 생각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내가 잘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아이를 낳기 어려운 세상에서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해야만 하는가?
안 낳고 싶다면, 넉넉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다면, 선택을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사회가 왔다.
내 돈과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면, 그래서 아이에게 잘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이라면 안 낳아도 된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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