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공을 건축으로 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이라는 책을 읽었다. ‘건물에는 희노애락이 모두 담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어 슬픔을 담을 수 있다. 모두가 열광하는, 공연장 같은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즉, 건물은 사람들이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터전인 것이다. 그 이후로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갔다. 책에서 나온 건물들을 찾아다니며, 책의 내용에 떠올려 감상에 젖은 적도 있다.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을 담아주는 일을 한다니! 일을 하면서도 뿌듯하리라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건축 전공을 할 것이라 떠들고 다니던, 나름 귀여운 모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에서 줄곧 공부를 '열심히'하는 하는 학생이었다. 애석하게도 '잘'이 아니라 '열심히'이다. 다행히도 대학 지원시 원하는 과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노력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건축 관련 학과는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가 있다. 나는 건축공학과를 선택했다.
(TMI : 두 학과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내가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간단하게만 얘기하자면 건축학과는 건물을 '설계'하는 입장이다. 도면에다가 건물을 그리는 사람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건축공학과는 설계한 도면을 받아 실제로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공학적 역량을 뽐내보기 위해 호기로운 선택을 했다 *^^*)
운좋게도 나쁘지 않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길었던 고등학교 생활과는 다르게 대학 생활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바쁜 와중에도 건축에 대한 책을 꾸준히 읽고 견학을 다니며, 감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4학년 때였을까.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건축 대기업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었다.
상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건축공학과를 나온 대부분의 학생들은 현장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시공'이라고 부른다. 말그대로 '관리'하는 역할이며, 실제로 건물을 지어 올리는 사람들은 현장 근로자 분들이다. 그래서 나이나 경력이 적은 관리자들은, 기에 눌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상대는 10년 이상 건물을 짓고 계시는 베테랑이다. 어깨 딱 피고, 틈틈이 발성 연습을 하고, 강하게 나갈 때와 약하게 나갈 때를 알아야 한다. 현장을 끊임 없이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몇만보씩 걸을 체력을 쌓는 것도 잊지 말자.
업무 환경은 몹시 수직적이었다. 내가 낮은 직급임을 느낄 수 있었던, 말하지 못할 일들이 있었다. 나보다 먼저 온 대리님은 나에게, 드라마 '미생'을 꼭 보라고 추천해주셨다. 그게 인생이라고. 현실이 아쉬웠다.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회사에 왔던걸까. 10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한 기억들이 떠올라 서러웠다. 이 분야로 취업한다면, 하루 하루를 버텨가며 살아갈 것이 뻔했다. 현실을 잘 말해주지 않았던 선배들이 원망스럽고, 전공 지식만 알려주시는 교수님이 미웠다.
가장 실망적이었던 것은 내가 지을 수 있는 건물이 거의 아파트라는 사실이었다. 건물에 희노애락을 담아가며 보람차게 일하고 싶었던 나의 생각과는 달랐다.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보람찬 일이지만, '아파트'라는 건축을 위해 나의 인생을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었다. 그런다고 변하는 것이 있을까. 이제 내가 살 방법을 도모해야 했다! 그래도 내 소중한 대학 졸업장을 포기할 수 없기에, 건축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피차 비슷한 일이거나, 공기업을 가야 했다. 대학원을 가는 선택지도 있었다.
공기업을 가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가 회사에서 해고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내가 싫어하는 '저 사람'도 해고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공기업 사이의 이직이 쉬운 것도 아니기에, 공기업은 선택지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대학원은 또 어떨까. 이 결정은 많은 학비를 부담해야 하는 결정이었다. 교수님을 계속 팔로우 해야 한다. 나를 공부시켜주시고, 돈도 주시고 , 취업도 시켜주신다니. 필연적으로 나에게는 신적인 존재가 될테다. 돈도 부담이고, 그 생활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렇게 취업한다고 해도,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는 이제 뭐하고 살아야 하는걸까
짜릿했다. 졸업까지 1년 남았는데 내 인생에 너무나도 큰 이벤트가 발생했다. 졸업한 선배들은 다들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가실텐데 나도 그래야 할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 좀 재미있게 하고 싶었다. 문득 내가 이전에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대단하게도 나는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수석을 했었다. 그 누구도 몰랐지만 사실 내가 IT인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IT 기업을 간다면 내 생활이 어떨지 더 찾아보게 되었다. 우선 일이 많다. 새벽까지 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일하는 것이 재밌다고 한다. 주변 동료들에게 힘을 얻는다고 한다. 무서웠지만 매력적이었다. 힘들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많은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장 어떻게 IT 업무 역량을 쌓을지는 고민이었다.
42서울이라는 곳을 찾았다. 2년 교육과정인데 그동안 돈을 지원해준단다.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나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정신 나갈 뻔 했던 교육생 선별 과정을 거치고, 좋은 팀원들이 생겼다. 일터에서 마음이 데이신 분들이 있어 공감되었다. 해외에서 과로에 힘들어하시다가 귀국하신 분, 소방 일을 하시던 분, 안좋은 중소기업을 다니시다가 나오신 분. 이질적인 동질감이 들었다. 왠지 위로가 되었다. 이 팀과 동아리가 모두 좋았다. 그렇게 나의 IT 인생이 시작되었다.
개발자가 되었고 바인드에서 일한다
IT기업과 꽤 맞는다. 원채 의미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강제로 무언가를 해야하는 상황을 싫어한다. 고등학교 시절 반강제 자습시간에, 호랑이 선생님 앞에서 소설을 읽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깡이 대단하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패션 산업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40-50대 남성을 위한 패션 플랫폼이다. 아빠 생각이 나서 공감된다. 이 나이대의 남성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편리하게 구매하셨으면 좋겠다. X세대 화이팅.
이제 20명 남짓한 회사이다. 내가 회사 인원의 5%를 담당한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난다. 그래서 부담되긴 한다. 그런데 그런 부담을 즐기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이상하다. 이 회사에 좋은 사람들이 깨나 있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적지만 책임감이 매우 강하신 분들이다. 어려운 상황을 같이 헤쳐나갈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든든한 동료들이다.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개발자와 일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내 밑천이 드러나기 전에 머리를 채워야 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나를 평가한 적이 있다. 나는 두뇌 회전은 느린데 큰 결정을 쉽게 내린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심장 저릿한 선택이다. 대학 가겠다고 주말에도 학교 나와 자습했는데. 대학교에서도 괜찮은 학점으로 졸업했는데.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로를 바꾸다니. 언제까지 내가 이런 깡을 부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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